사진을 보고 사과를 그려보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한다는 점이 무척 뿌듯해요.
마음에 드는 사과 사진을 인터넷에서 고른 뒤 캡쳐 하고,
그걸 흑백사진으로 바꾸면 보고 그릴 수 있는 견본이 됩니다.
사과는 구입니다.
하지만 자연물이기 때문에 선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 저 생긴 대로의 굴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지를 중심으로 퍼지는 결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을 잘 살려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단 사과 형태를 잘 잡아보고 싶었고,
연필 선을 잘 조절해서 사과가 덩어리로 느껴질 수 있게 하고도 싶었습니다.
양감(量感)이라는 거, 좀 어떻게 해보고 싶었던 거에요. ㅎㅎㅎ
처음에는 제가 그린 형태에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뭔가 '분명히' 틀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그만 둘까 하는 마음이 불끈 올라왔습니다.
동시에 제 마음의 중심에서
일단 시작해서 연필을 놓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뭐가 완성될 것이다 라는
단호하고 확신어린 목소리도 들리더군요.
뭐, 그렇다면 해보는 거죠. 고고.
한 시간 정도 연필을 들고 종이와 씨름하다 보니
주먹밥 같았던 형태가 약간 과일 비스무리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보면요. ㅋ
사진에서 미세한 다른 톤들을 발견하고
구석구석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매만져주기 시작했습니다.
숨은 면들을 찾아주면서 곳곳의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호기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싶으니까
처음에 비해 조금은 더 보이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다시 쓱쓱- 하며 그리고 닦고 그리고 닦고 하다보니
이번에는 여기까지 해볼 수 있었습니다. ㅋㅋ


이번에 연필로 사과 소묘를 해보면서
저는 이 작업이 마음을 읽어주는 과정과 참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큰 형태는 제가 잘 느끼고 알아 차리는 감정을,
덩어리 안에 나눠진 면들을 찾아 연필선을 올려주는 작업은
강한 감정들 사이에서 제게 이름 불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러 숨은 감정들을 찾는 과정과 참 비슷했어요.
양감을 올려는 과정 없이는 사과 덩어리가 온전해지지 못하는 것 처럼
내 안의 여러 감정을 찾아 알아주지 못하면 내 마음 또한 온전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요.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들은 내 마음의 밖과 안을 풍성하고, 풍요롭게 해줍니다.
나는 생기있게, 삶은 다채롭게 경험 할 수 있게 해주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 저도 계속 노력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도 한 개 더 그려보려고요.
사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