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보고 그리기 보다는 이미 그려진 것들을 보고 따라 그리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참새 연필 소묘 그림을 주셨는데, 보자마자 너무 정교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일단 덩어리 느낌이 날 수 있게끔 고민해서 그려보자고 말씀 주셔서 그러겠다고 하고 숙제로 그림을 받아 왔습니다.

일단 뭐 대충 형태를 잡아봤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전체 모양을 잡고 난 다음에 팁으로 알려준 것 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두운 곳들은 쓱쓱, 연필로 색을 올려 밝고 어두운 곳들을 나눠 보았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에 소묘, 양감, 새 등의 주제어를 넣고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독수리를 그리기 전, 형태를 면으로 나누어 연습하는 블로그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걸 보고 대충 따라 연습을 해봤습니다. 음... 이런 식으로 형태를 면으로 나누라는 건가?

그리고 나서 먼저 그려봤던 형태를 과감히 포기하고 두 번째 형태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먼저 한거나, 나중에 한거나 큰 차이는 없었어요. 다만 마음을 좀 새롭게 잡아서 시작해보자는 의미? 정도 였지요. 그런 다음에는 디테일한 묘사는 뒤로하고 나름대로 면을 좀 나눠서 색들을 약하게 여러 번 올려보자 했습니다. 한 번 집중해서 그려 본 뒤에 책상위에 두고 왔다갔다 하다가, 좀 더 하고 싶으면 또 칠해보고, 그러다 다른 일을 하고 또 해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완성된 새는, 그래도 제 노력과 성의가 보이는 무언가가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오며가며 너무 여러번 색을 올린 나머지 로보트 같고 이상해 보였어요. 흠... 그렇다면 이제 칠하는 건 멈춰보고 지우개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지워볼까나? 쓱쓱 밝은 부분들, 경계에 너무 연필선이 몰려있다 싶은 부분들을 지워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비워내니까, 응? 조금 더 비슷해지네? 오호!

홀로 일궈 본 이 정도의 성취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이 그림을 화실에 가지고 가니 조금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새로 보기에는 무리가 없고 이 정도면 열심히 잘했다고 격려를 받았어요. 좋았어!
저는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할 수있는 한 이 그림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죠? 도무지 뭘 어떻게 건드려야 그 다음으로 가는 지 혼자서는 알 수 없었고요.
멀리서 그림을 보시던 선생님은, 날개 아랫쪽에 면을 잡아보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어느 부분인지 얘기를 듣고 시키는 데로 한 번 해봤는데, 약간 날개 깃털의 다른 부분 부분이 약간 표시 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 다음은? 다시 물어봤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거기 면을 잡은 부분의 깃털을 하나하나씩 다 찾아서 그려주세요. 네? 이걸 다 해보라고요? 끝까지 그려본다고 했어도 솔직히 털 하나하나까지 잡아 낼 자신은 없었는데 그걸 하라고 하니까 숨이 확 막혀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되니깐 해보라는 거겠지? 저를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림을 많이 그려본 분이 제안하시는 거니까 되는 거겠지? 2B 연필 있나요? 뾰족하게 자주 깎아가며 해야해요. 살살 날개를 찾아서 명암을 이렇게... 간단한 시범을 보고 난 뒤에 약간 감이 왔어요.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서로 겹쳐져 있는 깃털들을 하나하나 헤어려 찾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눈으로 그리다 보면 어디를 그리는 지 나 자신도 헷깔려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찾아 가며 그렸어요. 형태를 조금 다르게 그려서 똑같게 하기는 어려웠지만 제가 펼쳐 놓은 판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집중하며 그려보았습니다. 어라? 되네? 신기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샤프처럼 꺼내쓰는 얇고 질긴 지우개를 주시면서, 이제부터는 이걸로 이제 지워나가면서 그려봐요 라고 다시 제안해주셔서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그리고 지우고 또 그렸어요. 조금씩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아 가면서 한 껏 몰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화실에서의 흐름을 집에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건 더 진하게 해보자. 응? 좀 아닌가? 그럼 이쪽을 조금 지워서 한 번 보고... 이쪽을 칠해볼까? 부리와 눈을 살아있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칠하고 보고 칠하고 지우고 또 보고. 좋았어. 이제 다리만 남았네. 응? 잡아 놓은 다리 위치랑 형태가 틀렸구나. 계속 안보이다가 왜 지금 보이지? 그럼 다 지워보자. 다시.. 아 왜 마지막이 되어서 이렇게 잘 안되지? 그래도 쓱쓱... 쓱쓱. 좀 비슷한가? 아까 보단 낫네. 쓱쓱쓱쓱쓱쓱쓱.....
검은 지우개 가루가 먼지처럼 뽀얗게 탁자 위에 넓게 흩뿌려져 가던 어느 순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냈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짠!

하하하.
뼈를 갈아 넣은 참새가 완성되었습니다. 끼야! ^^
더 가고 싶은 데 어디로 가야할지 그 다음이 보이지 않을 때,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어 본 사람의 제안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부족한 자기 확신을 잠시 접어 두고 일단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더군요. 혼자서 전전긍긍 하기 보다 지금 상태를 인정하고 '모르겠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정직한 행동 한 번이 여정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는, 참새 만큼이나 친근하고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물론 내가 설정한 목적지까지 꼭 도착하고 싶다는, 야무진 소망도 함께 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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