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계속 예민해지고, 흥분 되서 뛰어 나가고 싶고 주체할 수 없는 궁금함을 어떻게 참으라고 하는 걸까요?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 중엔 마음 속에 이런 갈등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 꽤 됩니다. 족히 30~40여명의 아동들을 상대해야 하는 선생님에게도 버거운 아이들이 될 때가 많죠. 이런 친구들은 전체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을 답답해하고,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 하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시키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리고 남자 아이들은 자기가 힘센 것은 얼마나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데요. 자주 경쟁적으로 힘을 보내주기 위해 놀이를 하다가 크고 작은 사고나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선생님은 아이를 다그치기 위해 수없이 이름을 부릅니다. ‘00야, 제발!’. 그러다보면 아이는 곧 교실과 학교에서 유명인이 되기도 해요. 말썽꾸러기 00라고요. 콜롬비아에서는 깐손 Cansón이라는 단어를 써요. 예를 들어 호세가 너무 말도 안 듣고 수업에 관심도 없는데 장난만 친다고 하면 ‘José es cansón’, 여아 마리아의 경우엔 ‘Maria es cansona’, 뭐 이런 식이죠.
색천으로 놀기 - 영웅패션쇼, 나만의 아지트
그래서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잘 놀 적절하게 힘을 조절하면서 한계를 수용하며 작업을 하는 과정들이 중요합니다. 가장 많이 썼던 매체는 다양한 색 천들이었어요. 센트로 천가게에 가서 대략 10여 가지 각기 다른 색깔의 천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니, 아이들은 금방 자신들을 슈퍼맨이나 배트맨, 어벤져스에 나오는 영웅들, 혹은 해적으로 변신시켜 신나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악역을 자처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뭐 어때요? 어차피 놀이인데요.
자신감이 약한 아이들도 있죠. 쉽게 수줍어하고 상황에 쉽게 압도 되서 눈치를 많이 보는 친구들이요. 그런 친구들에게도 천은 자신을 마치 패션 쇼 모델이나 연극배우처럼 변신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되어줍니다. 자신 없는 부분들을 가릴 수도 있고, 또 꾸미기에 따라 더 멋지게 보여 지게 만들 수도 있으니, 천을 몸에 감고 머리에 두르고 하는 일들이 아이들에겐 참 신나는 일이 되겠죠? 놀이에 젖어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틀어주면 아이들은 웃으면서 멈칫 멈칫 하다가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멋진 모델 역할에 다시 흠뻑 빠지죠. 천은 또한 협동 놀이를 가능하게도 합니다. 귀퉁이를 잡고 작은 공을 함께 튀기거나 물건을 옮기거나 던지고 받고 하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니까요.
그러던 천은 어느 덧 자신만의 본부실을 만드는 소재로 활용이 됩니다. 놀이를 통한 표현욕구가 충족된 아이들은 곧 편안하게 푹 쉴 수 있는 공간을 원하게 되거든요. 혼자가 아니라 둘씩 짝을 지어 의자를 활용에 집을 지어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곧 자신과 제일 죽이 잘 맞았던 친구와 함께 본부실을 만듭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죠. 아직 친구와 자기 것을 나누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혼자만 살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그것도 좋습니다. 함께 공간이건, 각자 공간이건 여유를 주되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아이들이 더 견고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잘 지내는 것을 봄으로써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들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마무리는 함께 정리하기. 몇 주 전에는 서로 싸우고 생채기 내기 바빴던 아이들이 천의 양 귀퉁이 끝을 나눠 잡아 천을 접으며 정리에 동참하는 것. 치료는 이 모든 세세한 과정을 지켜보고 변화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매체와 친구되기 : 점토와 물감
한편 점토와 물감 같은 재료들도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줘요. 일단 점토는 힘이 센 아이들이 맘껏 두들기고 파괴해도, 그 힘을 다 수용하면서 동시에 모양을 회복하고 재사용을 가능케 하는 매력적인 매체지요. 아이들이 힘껏 힘을 발산할 수 있게 도우면서, 발산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구획된 판을 나눠주고 그 속에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면, 아이들은 곧 주어진 한계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나갑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교장이 되는 학교, 운동장 그리고 설명을 들어도 어른들이 잘 파악되지 않는 그런 공간들을 창조해요. 만들 때 집중력은 정말 놀랍고요. 참 효과적으로 기능하죠. 발산과 몰입, 그리고 작업을 소개함으로써 아이들은 다양한 측면의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물감은 처음에 연습이 필요해요. 이건 저도 놓쳤던 부분을 제 코워커가 제안해서 함께 만들어 나가고 배웠는데요. 물감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물 양을 조절하고 색 양을 조절하는 등의 노력이 들어가죠.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어요. 이럴 때는 물감을 주기 이전에 마른 붓과 스폰지로 톡톡 물을 조절하고 바르고 하는 것들을 연습해 볼 수 있구요. 그런 다음 아이들이 준비 됐을 때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면 되요. 아이들은 물감이 발라지고 모양을 그리고, 색을 섞고 하는 다양한 과정 속에서 즐거움과 뿌듯함을 함께 느낍니다. 정말 탁구공 같이 통통 튀던 친구가 한 자리를 지키며 놀랍도록 몰입하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랑하며 아이의 웃음을 보내올 때. 그리고 한 결 편안하고 보드라워진 상태로 작업을 마무리 할 때, 치료사로서 보람과 감사가 마음 한 구석 차오르죠.
LOS MEJORES : 나를 위한 강점 금메달
마무리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얼굴을 넣은 종이 금메달에 프로그램 내에서 자신이 스스로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적어 <최고들을 위한 시상식 Los Mejores>으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있던 학교에서는 일 년에 딱 1번,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서 그동한 수고한 교사와 학생들, 학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들의 밤 La Noche de Los Mejores>를 진행했는데 모두가 상을 받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내에서는 선망과 권위가 있는 시상식이었어요. 그 아이디어를 잠깐 차용했죠. 금메달을 만들기 전에는 그동안 프로그램 과정을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고, 서로의 장점을 피드백 하거나 자기 장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 뒤에 금메달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아무리 장난꾸러기들이라 해도 진지하게 자기 작업에 집중하죠. 그런 뒤엔 자리를 정렬하고 한 명씩 호명하며 자신이 만든 메달을 코워커가 시상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내가 가진 여러 가지 모습 중 장점을 지켜봐주고 이것이 내 삶을 보다 행복하고 의미 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강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내 일부분을 스스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이 짧은 의식을 통해 나누고 경험하는 것이죠. 콜롬비아 공립학교에서는 한국만큼 다양한 내용으로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시상식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마지막 프로그램에 약간의 격식을 넣으니 3학년 여자 아이들은 제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가는 줄 알고 시상식 내내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개구쟁이들의 숙연하고 의젓한 시상식 모습은 또 어땠구요. 몇 달 동안 자란 아이들을 보면 그땐 제 눈이 촉촉해 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아이 별로, 집단 별로 구체적인 진행 내용들이 다르고, 다양한 상황 변수 때문에 처음 계획과 달라진 부분도 있었지만 큰 흐름은 대게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연재끝] GRACIAS Colombia! (KOICA, 2017-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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